어제 그제 안 하던 운동을 한 탓에 온몸이 쑤신다. 하루만 쉴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런 정신자세로 어떻게 혹독한 겨울을 운운할 수 있을까 싶어 출근할 때
운동복을 주섬주섬 챙겼다. 가뜩이나 마음이 불편한데 집사람은
내 하는 폼 새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당신 괜찮아? 오늘 숙제 해야 돼?”
“응. 크로스컨츄리를 하라는 데 남산밖에 더 있나?”
“저녁은?”
“사무실에서 먹고 가지 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시작해.”
어째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다. 올 한 해 그렇게 지겹도록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짜증을 낼 법도 한데 군말 없이 가방에 이것저것
차곡차곡 챙긴다. 이제 수도승이 다 된 걸까?
“추울 텐데 모자가 없네. 나중에 하나 장만하고 우선 이거 써.”
지난 겨울 스키장에서 장만한 요상한 브랜드의 싸구려 털모자다.
일단 그렇게 준비하고 나왔는데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고관절 부위와 발목 등
요소요소가 편치 않다. 거기다 허리에 담이 들었는지 뻣뻣한 게
영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 좀 뛰다 보면 나아지겠지.
생각보다 시내는 막히지 않아 8시가 못 되서 국립극장에 도착했다.
날씨 때문인지 남산길 근처 도로에 주차된 차가 별로 없다.
화요일은 제비마 회원들이 녹색휴게소에서 모인다지? 내가 조금 늦었는데
달리다 보면 만나겠다 싶어 서서히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남산 산책로는 비록 야간이지만 전에도 몇 번 훈련차 달린 적이 있었다.
또 자전거로 팔각정을 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주변을 보기 보다는 전방 3~40m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달리는 데
열중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분이 다르다. 오가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한여름의 영화를 누리던 나뭇잎들이 다 떨어진 후라 시내야경이 훨씬 밝게
시야게 가득찼다.
처음 출발할 때는 팔각정이 오른편에 있다가 조금 지나면 왼편으로 돌아 눕는다.
그러다간 어느새 바로 코 밑을 지나가기도 하다간 다시 휑허니 토라져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진짜 삐졌나 보다 하고 거친 호흡으로 달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왼팔을 베고 자는 게 영낙없는 마누라 같다.
그렇게 즐런을 하며 몸을 뎁히는데 2km 지점에서 낯익은 트레이닝복이 보인다.
NB훈련복을 입은 모습이 우리 회원이시다. 얼굴도 낯이 익었다.
“안녕하세요? 동계교실 회원이시죠?”
“아예~”
그리고 서로 수인사를 나눴는데 찬바람 때문인지 금새 까져먹고 만다.
후암동에 사신다는 그분도 나처럼 후반이면 쳐지는 병 아닌 병을 갖고 계셨다.
어제도 나와서 두바퀴를 도셨다는데 오늘도 벌써 두 바퀴째를 돌면서도
그다지 힘들어 하시는 표정이 아니다. 내공이 쌓이면 저렇구나 하며
녹색휴게소에 이르렀을 때 제비마회원 예닐곱 분이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벌써 회장님은 다녀가셨단다. 언제나 부지런한
제비마회원 님들을 뵐 때마다 나도 매주 이곳에서 얼굴을 익혀야지 하며
다짐하지만 항상 밋밋한 한강변을 손쉽게 달리는데 길들여져 번번이 계획으로만
그치고 만다. 그게 나의 한계다. 편한 훈련으로 기록을 단축하려 했기에
1년 내내 부상이 따라다녔던 것이다.
전에는 이 곳을 달릴 때 조깅 정도로만 달렸다. 쉬엄쉬엄 설레설레.
그렇게 달리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오르막에서 킥을 하라고? 스피드를 올리란다.
그게 언덕훈련 이란다. 그대로 따라 해본다. 바로 저기가 고비인데 자꾸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쩌면 여기서 못 넘으면 앞으로 나타나는 모든 언덕에서도
못 오른다. 한번 끝까지 달려보자.
방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한계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사람은 항상 그곳에서 좌절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을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아무리 마라톤은 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멘탈적인
요소가 더 강한 법이다. 이 순간을 넘기자. 좀더 힘차게 킥킥킥!
일단 긴 오르막을 단숨에 오르자 다리는 후둘거리고 숨은 턱까지 찼지만
내가 늘 정상을 앞두고 몸을 사리던 한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무척 고무되었다.
사실 계획은 세바퀴를 도는 것이었지만 처음에 무리하면 부상을 안고 겨울을
나야하기 때문에 두바퀴만 돌기로 했다. 처음 3km보다 반환할 때는 시간이
당겨졌다. 두 번째 바퀴는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평지와 내리막에서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달리고 오르막에서 피치를 올리는 것이 이제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어느새 땀이 온몸을 휘감고 흘렀다. 시내야경이 훨씬 명료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마치 나를 위해 빛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마지막 녹색휴게소에서 턴하자 4명의 런너가 앞서 달리고 있었다.
혼자 뛰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그들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거친 숨소리를 의식해선지 뒤를 힐끔 거리던 그들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나와의 거리를 두려는 심산이다. 언덕 구간이 나오자 조금 속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구간을 치고 나갔다. 언덕 훈련이란 이런 거야 하듯이.
그렇게 한 고개를 넘자 뒤 따라오던 네 명 중 두 명의 주자가 내 뒤를 따른다.
내리막길에선 나를 앞서 나간다. 그러나 다시 오르막. 또 치고 나간다.
그들의 어깨가 내 뒤로 지나면서 발자국 소리도 멀어져 간다.
다시 긴 내리막. 그 중 한 명이 바싹 따라 붙는다. 조금 앞지른다.
그러나 마지막 언덕이 나타나자 그 주자의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나는 다시
치고 나갔다. 마지막 언덕을 오르자 가슴 한 구석에서 해냈다는 뜨거움이
솟아났다. 쿨다운을 하면서 이제껏 남산 훈련에서 느끼지 못한 희열감을 만끽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서고 있다는(사실 한번 뛴 것으로 한계를 넘었다는
것은 좀 무리일 수 있다) 자신감이 추위를 녹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마지막 보강운동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해야 되겠다 싶어 가로등
아래서 무릎높이 올리기를 하는데 참 희한하지? 왜 이렇게 숨은 방구가
쉴 새 없이 터지는지… 100개를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80에 가서는 점점 슬로우 모션이 되더니 상체가 자꾸 뒤로 젖혀지며 무릎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팔 굽혀 펴기는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30개를 했다.
두 번째 세트는 간신히 100회 20회를 하고, 세 번째 세트에서 올라오지 않는
다리를 간신히 올리면서 100회를 마무리 짓고 팔굽혀펴기 20회를 끝으로
아스팔트에 몸을 뉘였다. 등이 참 시원해져 오며 이럴 때 맥주 한 잔 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은 구름에 가려 희뿌옇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승사자 같은 무셔운 얼굴의 방감독이 달과 오버랩 되자
어마 뜨거라 하며 후다닥 일어나 차 타고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근육 곳곳에 뭉쳤던 것들이 시원스럽게 풀린 기분이었다.
아~ 이럴 때 한 잔 했으면 하는 못 말리는 유혹… 에흉~ 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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