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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동계훈련 3 – 오르고 또 오르면 |
| 최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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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8 09:24:35, H : 1,898, V :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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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동계훈련 3 – 오르고 또 오르면
2004.12.30(목)
오늘은 계획 상 휴식이지만 하루 전에 일정을 앞당겨 휴식을 취했으므로 밀린 숙제를 해야한다. 다행히 바람이 잦아들어 한결 추위가 덜했다. 보통 이맘때 쯤이면 시내는 연말특수로 흥청거리기 마련이건만 휘황찬란하게 보이던 불빛도 저 혼자 졸고있는 가로등처럼 외롭게 깜박이고 있다. 이미 퇴물이 되어버린 늙은 배우의 초라한 1인극을 보는 것 같다. 텅빈 객석 구석 자리에 땅콩 파는 아줌마만 우두커니 앉아 그의 연기를 지켜볼 뿐 더 이상 생기없는 배우의 연기는 무대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그렇게 시내는 기운을 잃고 파리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말이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센티해 진 걸까? 여의도에서 남대문 충무로를 거쳐 오는 길에 잠시 긴 세월의 터널을 통과한 듯한 느낌이다.
오늘도 여전히 남산 산책길엔 사람이 뜸했다. 오늘 과제는 스트레칭과 본격적인 언덕 훈련. 사실 그동안 제대로 된 언덕훈련을 해보지 않아서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무조건 뛰면 되나? 그냥 막 달려? 그런 생각을 하며 워밍업 한바퀴를 돌았다. 화요일 때보다 웃옷을 하나 덜 입으니 한결 몸이 가볍다.
어디쯤이 적당할까 물색하다가 적당한 높이와 길이를 가늠해 보니 1,000m 구간에서 양쪽으로 150m를 달리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 같았다. 어떻게 달릴지 몰라 조금 속도를 빠르게 하고 달리는데 이상하게 뭔가 밸런스가 안 맞는 것 같다.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논다거나 할까?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안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5회를 실시하다가 아하~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 주법이 다르지. 나는 주로 장거리주를 편하게 달리는 주법으로 훈련을 해왔는데, 언덕에서의 주법은 단거리 주법인 킥킹 위주인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즉 발 뒤꿈치를 먼저 내딛는 것이 아니라 앞꿈치로 탄력을 주어 치고 나가야 되는 것이다. 다시 시험해 봤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래서 무릎높이올려뛰기를 가르쳤구나. 그럼 언덕훈련의 주 목적은 앞꿈치의 탄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종아리와 정강이 근육의 단련을 통해 장거리주에서 훨씬 효과적으로 언덕을 오르게 하기 위함이구나. 거기에 심박수 높이는 것도 한 몫 하고.
일단 요령을 알자 재미는 붙었는데 8회를 마치자 숨이 꼬꾸라질 것 같다. 이 정도로 혹독한 겨울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해 본다. 마침내 10회를 마쳤을 때는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움 증과 함께 구토증세가 느껴졌다. 잠시 진정 후 이게 한계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젓곤 한 번만 더 하며 달려본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8회에 그쳤을 것이다. 서둘러 자신과 타협한 것이다. 사실 훈련을 하다 보면, 아니 시합 때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힘든 상태가 정말 탈진할 정도로 힘든 상태인지 아니면 자신과 쉽게 타협하기 위해 한계 치라고 느끼는 건지 애매할 때가 많다. 지금 돌아보면 타협이 80%를 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동계훈련을 통해 자신과의 나약한 타협은 거부하련다. 진짜 한계가 어딘지 그 끝을 확인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지난 10/3 강남구체육회장배 마라톤대회가 생각이 난다. 아내가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하는 대회였다. 우리는 거의 꼴찌 수준으로 달리는데 하프를 지나자 우리 뒤로 쳐지는 사람도 더러 생겼다. 그 중 젊은 남자가 한 말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참고적으로 그 대회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해 양재천과 탄천을 돌아오는 코스였다. 그 코스를 달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언덕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 이 친구 왈,
“에이씨~ 또 언덕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문득 앞을 쳐다보니 캬~ 경사도 미미하고 거리도 20여미터 밖에 안 되는 간단한 오르막을 언덕이라고 부르는 거였다. 당시 아내와 나는 실소를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맞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은 무척 어렵고 또 두렵게 느껴진다. 그 청년은 오르막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경사가 나타나도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장벽은 스스로가 도전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바로 마음에서 생기는 병인 것이다. 그 병을 이결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고 방법은 도전 이다. 새로운 세계는 결코 남이 가져다 주지 않는다. 바로 자신만이 그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엔 기필코 그 문을 열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생긴다.
돌아오는 길에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전에는 언덕훈련(비록 대충한 거지만)을 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 짐짓 흐믓해 진다. 조금씩 천천히 해나가는 거야. 절대 서둘지 말고 무리하지도 말고. 그렇게 2005도를 준비하는 거야.
차 타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예전 학창시절에 즐겨 애창하던 시조가 떠올랐다. 등산을 좋아했을 때 힘들어 하는 선후배들과 함께 자주 암송하던 대목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그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먼저 타협하려고만 하니 오르질 못 할 뿐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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