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강도 높은 훈련 탓이었을까 도저히 8시 뉴스 이후론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어 염치 불구하고 먼저 침대에 몸을 뉘였다. 9시나 됐을까? 벌써 자냐는 마눌의 투정어린 목소리도 멀리 꿈결처럼 들려왔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리에 열이 달아오르는 통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잠이 깨었다. 마눌은 마치 전문의 마냥 증세를 묻더니 냉장고에서 얼음 팩을 꺼내와 다리 찜질을 해준다. 그렇게 다리가 뜨거운 건 처음이었다. 밤새 끙끙거린 탓에 마눌도 잠을 보챘는지 아침에 일어난 모습은 둘 다 부스스했다. 그나마 나는 푹 잔 편이었다. 내가 낸 신음소리를 내가 듣고 깬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짜증 부리기 보다는 괜찮냐는 마눌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가뿐한데’ 하며 쪼그려 뛰기를 해 보이니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 만다.
사실 어제 훈련 중 두 군데에 이상이 생겼었다. 지난 여름에 보폭을 늘린답시고 겅충껑충 뛰는 훈련을 몇 번 한 결과 왼쪽 무릎 뒤 오금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다리를 오므렸다가 펴려면 지독하게 저려오는 증세가 그것이었다. 당시 「달리는 의사들」 이동윤 원장에게 찾아가 진찰해 보니 무조건 쉬라는 처방전을 하사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자꾸 무리하면 6개월도 간다는 섬뜩한 경고 메시지도 함께. 그래서 지난 중마 이후 포실 하게 살을 찌우며 지냈는데 최근 훈련을 무턱대고 쫓아가다 보니 조금 무리를 한 듯 하다.
또 하나는 무릎높이올려달리기를 할 때 좀 무리하게 킥을 해선지 오른쪽 대퇴이두근 중앙부위에서 골반까지 쥐가 나듯 뻣뻣해 지는 것이다. 서킷 트레이닝 두 번째 세트를 할 때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후 조심하면 살짝 숨었다가 다시 스피드를 올리면 달리지 못하도록 신경질을 팩 내곤 했다. 다행히 큰 탈 없이 훈련이 끝나고 집에 와서 마사지를 하니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보통 일요일은 휴식이다. 그렇다고 정말 휴식만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지난 12/26일에 휴식 않고 써킷 트레이닝을 혼자서 했었다. 그날도 몹시 추웠는데 허리를 무리했는지 왼쪽 등짝에서 척추로 내려오는 근육에 담이 들었다. 처음엔 단순한 근육통이려니 했는데 제법 오래 간다. 허리를 좌우로 돌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당분간 추울 때 무리는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정말이지 모처럼만에 점심 때 온 식구가 모여 만두를 빚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만두 만들기는 온 식구의 화합의 장이었다. 나는 밀가루 반죽과 피 만들기, 어머님은 소 반죽, 나머지는 마눌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들 네미는 반죽 떼 놓은 거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었다. 영어캠프에 간 딸 네미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그득하게 점심을 먹고 나면 오침 시간이다. 어머님부터 방에 들어 가셔서 누우신다. 나는 자투리 시간이 아까와 집 사람과 아들을 데리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마눌의 겨울용 트레이닝 복을 사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이즈도 없고, 워낙 패션에 민감한 터라 맘에 드는 디자인이 없자 그대로 나왔다. 그래서 향한 곳이 NB 명동매장이다. 명동은 신정연휴로 사람들이 북적 였다. 타이즈와 스트레칭복, 모자를 샀다. 본인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고르도록 했다. 설마 저걸 사줬는데 못 뛴다고는 않겠지? 새 물건을 사서 좋은 것도 잠시 집에 돌아올 때 ‘오늘 저녁에 한번 시범 주행 해야지?’ 했더니 걱정이 앞서는가 보다. 하긴 지난 춘마 이후 운동화 한 번 안 신어 봤으니 걱정도 되겠지. 저녁을 먹고 나자 몸이 찌뿌둥 하다느니 어쩌느니 살살 빠질 궁리만 해댄다. 그러나 어림없는 소리. 내가 먼저 주섬주섬 챙겨 입으니 이내 포기하고 순순히 따라 나선다.
엊그제 저녁의 칼바람에 비하면 봄바람이라고 할 정도로 바람은 많이 잔잔했다. 날도 그리 차웁지 않고. 오늘은 가볍게 4km만 뛰고 보강운동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깅 후 땀이 식자 추위를 이기지 못해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음~ 다음부턴 땀 식지 않을 정도로 뺑뺑이 돌려야 겠군. 내가 토요훈련에서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줘야지. 마눌은 이런 나의 음흉한 속셈을 알고 있을까? 하긴 속셈이야 어떻든 미친동계훈련을 하는데 있어 든든한 동지 하나가 생겨 이번 겨울은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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