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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모두는 위대하다 -100km 울트라 마라톤 완주기
박동식  Home 2006-11-23 20:54:27, H : 2,647, V : 265


그들 모두는 위대하다

몇 개월 동안 운동을 접다시피 하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마감이 연장된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덜컥 신청해 버렸다. 그러나 대회를 딱 한 달 앞두고 신청해 놓은 대회였음에도 대회를 준비하는 나의 노력은 너무 무책임했다. 때문에 막상 대회를 며칠 앞두고부터는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늘 못한 훈련, 내일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해 왔던 일들이 후회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 2시 4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도 화장실에 갔다가 샤워하고 미리 사둔 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대회장에 도착한 시간은 4시 20분. 집에서 나서면서 미리 경기복을 입고 겉옷을 입은 터라 출발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5시에 출발 총성이 울렸고 출발 대기선 인근의 조명등 열기로 몸을 녹이고 있던 나는 얼떨결에 선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목표는 11시간 30분. 근거도 없이, 작년 기록이 11시간 48분이란 이유만으로 정한 목표였다. 그러나 초반 3km 지점부터 오른쪽 측면 정강이 근육에 통증이 느껴졌다. 가끔 도지는 고질 중의 하나로, 몸을 충분히 풀어주지 못한 상황에서 5분주에 육박하는 초반 무리가 문제였다. 의외로 민감한 이 부위의 통증은 마치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더 무리가 가기 전에 걸으면서 근육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초반의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러지를 못했다. 다행히 1km 정도 더 달렸을 때 동반주를 하고 있던 선배님이 소변을 보는 틈을 이용해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광진교를 찍고 돌아오는 보급소에서 정강이 부위에 멘소래담을 발랐다. 그러나 이미 정강이 근육은 탁구공 넓이의 혹이 나 있었다.

20km가 지나면서 벌써 몸에서 무리가 느껴졌다. 다리도 무겁고 젖산도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5분의 1은 뛰었으니 뛰어온 거리를 4번만 더 뛰면 된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삼았다. 30km 보급소에서 동반주를 하던 선배님은 큰 것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지를 챙기셨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40km 지점을 통과한 것은 출발한지 4시간 30분만이었다. 풀코스 기록에 비하면 많이 늦은 기록임에도 몸에서 느껴지는 부하는 더 큰 것 같았다. 이래서 완주를 할 수 있을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45km 지점에서 마주 오는 선두 선수를 만났다. 작년에는 50km 지점에서 만났는데 올해는 5km나 앞당겨진 것이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 선두 선수는 한국인이었고 작년 우승자였던 일본 선수는 몇 분도 되지 않는 거리로 2위를 하고 있었지만 너무 쌩쌩한 한국 선수에 비해 2위 선수의 얼굴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만 봐도 이미 끝난 게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나도 내 갈 길을 열심히 달렸다.

49km 지점은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교차 지점으로 이곳부터는 나에게 고향이나 같은 곳이었다. 훈련을 할 때 늘 신정교 아래에 주차해 놓고 그곳을 출발점으로 한강을 향해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양천 구간의 정확한 반환점을 숙지하지 않았던 나는 이곳에서 무척 힘든 레이스를 펼쳐야 했다. 대략 2km 지점에서 반환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달려도달려도 반환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반환점은 나의 훈련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정교를 넘어 몇 백 미터나 더 가서였고 그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아서 다시 한강과의 교차 지점에 도착했을 때도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훈련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뛰기 싫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바로 그곳에서부터 방화대교로 향하는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직선 코스인 이곳은 훈련을 할 때도 기피하는 곳인데 이제 후반으로 들어선 나에게 너무 힘겨운 코스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양천에서 빠져나와 방화대교로 향하자마자 곧바로 60km 지점을 알리는 푯말이 나타났다.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진 상태인데 이제부터 다시 풀코스를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앞이 까마득하게 느껴졌고 이미 방화대교 인근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선수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 5km 당 31,2분을 넘기지 않는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매우 만족스런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작년 70km를 전후하는 지점부터 느꼈던 엄청난 체력의 부담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후반에 대한 걱정은 떠나지 않았다.

65km가 조금 넘는 지점의 방화대교 인근의 반환점은 한마디로 축제의 현장 같은 곳이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후반을 도모하는 선수들이 마사지를 받거나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죽과 함께 많은 먹거리가 제공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이곳에서 마사지를 받고 옷도 갈아입었지만 올해는 죽 두 그릇만 먹고 그대로 출발했다. 나의 경기복장은 아래는 긴 타이즈, 상의는 스판 재질의 민소매를 안에 입고 겉에는 작년 이 대회 기념품이었던 긴팔을 입고 있었다. 장이 좋지 않아서 늘 찬바람을 걱정해야 했던 나에게 이 복장은 이번 대회 최고의 선택이었다. 출발 시각은 물론이고 한낮의 기온에서도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결승점을 향해 돌아가는 길. 마음도 새롭고 아직까지는 잘 달려주는 자신이 대견했다. 다행히도 70km를 넘기면서도 작년과는 다르게 초반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아프지 않은 곳은 없었다. 하체의 근육은 이미 경직될 데로 경직되었고 무릎 통증도 괴로웠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곳은 발목 통증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오른쪽 어깨까지 통증이 시작되어서 팔을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보급이 훌륭하기로 소문난 서울마라톤이었지만 체력이 많이 소진된 때문인지 보급소가 자꾸만 멀게 느껴졌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밥이 준비된 곳도 몇 곳 되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나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을 하고 있었고 경기 시작 전, 11시간 30분 목표는 물론이고 욕심을 낸다면 10시간 39분 이전에 골인도 가능할 것 같았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제법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힘이 솟는 듯 했다. 아무튼 나는 극도로 지친 가운데도 그런 착각 같은 상상을 하며 잘 달렸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처럼 드디어 고비가 찾아왔다. 아마도 80km 지점이었을 것이다. 5km당 32분을 넘기지 않던 기록이 무려 40분을 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나머지 구간을 그런 기록으로 완주를 한다고 해도 애초의 목표였던 11시간 30분은 달성할 수 있겠지만 이미 목표가 수정되어 10시간 39분까지 기대했던 상황이라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무너지기 시작하면 너무 힘든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 어떤 기록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5km 구간도 기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으로 이미 10시간 39분 이내의 목표는 물 건너 가버렸다. 하지만 10시간 49분 기록만큼은 꼭 달성하고 싶었다. 그럼 작년보다 1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니 그 정도만 해주어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남은 10km가 문제였다.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보급소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아끼려고 종이컵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원하는 보급품을 움켜쥐고 걸으면서 그것들을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급품을 챙기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잠시 멈추면 다시 뛰는 것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몇 백 미터가 필요했고 그 구간에서 느끼는 나의 관절과 근육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미 한계를 초월한 경우에는 쉬었다가 다시 뛰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보급소가 그리우면서도 두렵게 느껴지는 딜레마 속에서 뛰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듯 달리기를 멈추고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지기에는 나는 아직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90km를 넘긴 어느 보급소에서 깍두기처럼 토막 낸 수박을 움켜쥐고는 걸어가면서 어기적어기적 그것들을 입에 넣으면서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나의 손은 장갑도 벗지 않은 채였기 때문이다. 이제 장갑을 벗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던 나는 코 풀고 땀 닦는다고 더러워질 데로 더러워진 장갑을 낀 채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 조각들을 짐승처럼 입에 처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남은 거리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95km 지점을 통과하면서 이 힘든 경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대아산병원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보급소에 도착하니 한결 위안이 되었다. 이제부터 거리는 1km 단위로 표시되어 있었다. 바닥도 아스팔트가 아니라 콜크처럼 느껴지는 폭신폭신한 재질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거리들을 달려왔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운동과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즐비했고 올림픽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서는 무슨 행사라도 있었는지 예상외로 많은 시민들이 주로 주변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래도 1km 단위로 표시되어 있던 표지판을 보았는지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거리는 점점 좁혀졌지만 사실 올림픽 공원 안에서의 구간도 만만치 않았다. 골인 지점이 코앞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칠 데로 지친 상태에서 자꾸만 어디론가 빙빙 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디선가 힘찬 마이크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다 왔다는 응원의 소리들이 들렸다. 나도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달렸고 이윽고 어느 모퉁이를 돌면서 평화의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그 길었던 100km가 끝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법 먼 거리부터 아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 구간을 달려가는 내 앞의 주자를 추월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아름다운 골인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구간은 내가 장갑도 벗지 않은 채 움켜쥐었던 수박을 닮은 붉은 색의 카펫이 깔려있었다. 평화의 문 바로 아래 꺼지지 않은 등불을 비켜 지나고 사회자의 힘찬 소개와 함께 나는 결승 테이프를 통과했다. 내 목에는 완주 메달이 걸렸고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참으로 먼 거리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순간 작년보다 1시간이나 단축한 10시간 47분이란 기록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작년에도 열심히 달렸고 올해도 열심히 달렸다. 결국 나보다 1시간이나 늦게 들어오는 어떤 선수가 있겠지만, 작년과 올해 뜨거운 나의 가슴이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그 선수의 노력과 투지 역시 기록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100km 울트라 마라톤은 기록보다는 그것을 완주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고 그 먼 거리를 달려와 결승 테이프를 끊었던 모든 선수는 하나 같이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물품 보관소로 향하는 나의 걸음은 심하게 절고 있었지만 가슴은 그날의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르기만 했다. 그래도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보겠냐고 물으면 아직 나의 대답은 '아니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미친 것이 분명하니 내년에 나는 또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는 일이다.  
정발 (2006-11-25 07:08:36)

총무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깍두기 수박에 감동받았습니다.
 

백승철 (2006-11-27 17:36:00)

달리기 천재...^^
 

박동식 (2006-11-28 18:33:38)

3종계의 천재는 한 명 밖에 없다니까요. 길천재라고...^^*
 

박영근 (2006-12-01 13:33:30)

위대한 박동식총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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