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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동계훈련 23 - 절반의 성공 |
| 최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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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4:27:25, H : 2,485, V :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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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동계훈련 23 – 절반의 성공
2005.02.13(일)
아침수다
전날 일자산에서 간단히 치룬 언덕훈련의 후유증이 발목 언저리에서 맴돈다. 부상에 대한 걱정 때문일까, 아니면 올 첫 대회라는 부담감 때문일까. 새벽 3시부터 정확시 한시간 간격으로 잠이 깬다. 6시 종소리를 들으며 화장실에 눌러 앉는다. 더 이상 잠에 미련을 두면 몸만 피곤하겠다 싶어서 이다. 나 때문에 덩달아 잠에서 깬 마눌은 아직 잠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이불 속에서 웅크린 채 어린애 마냥 투정을 부린다.
허긴 요즘 들어 우리 부부의 바뀐 생활 습관 중 하나는 아침 수다가 생겼다는 것이다. 전에는 아침 잠이 모자라 7시를 넘겨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가까스로 일어났었는데 불과 얼마 전부터는(매일은 아니지만) 6시쯤 잠이 깨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침 잠이 없으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 하지만 도란도란 나누는 아침수다가 그리 싫지 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잠자리에 누우면 채 1분도 못 넘기고 잠에 골아 떨어지는 나 더러 잠탱이라고 놀리던 마눌도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별 다른 이야기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아줌마들 수다가 다 그러하듯 이 얘기 저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는 것이 전부다. 물론 서로에 대한 단점도 논하게 되지만 결과론적으론 잘 살아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그렇게 해피앤딩으로 끝나니 아침 기분이 좋을 수밖에. 요즘 우린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수다로 시작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오늘도 어김없이 수다 한 시간을 채우고서야 일어났다. 하지만 어제 발렌타인데이 선물을 포장한다고 늦게까지 작업한 아이들이 안 일어난다. 원래 우리집은 일요일 아침은 모두가 늦게 일어난다. 며느리도 쉴 땐 쉬어야 한다며 어머님이 며느리 늦잠Day를 윤허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통 일어나면 9시가 넘어간다. 어떤 때는 애들이 먼저 일어나 TV를 켜대며 배고프다고 시위를 하기도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일요일 아침 만큼은 누구도 마눌의 달디 단 아침잠을 깨울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적어도 9시에는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는데도 영 마음만 급할 따름이다. 준비물도 어제 챙겨두지 않아서 이것저것 옷장만 들쑤셔놓곤 결국 평소 입던 것으로 갈아입고 만다. 마눌이 화장하는 사이 후다닥 설거지를 끝내곤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 신발을 신으니 벌써 9시가 넘었다. 매번 이렇다. 미리 준비할 껄 후회하면서도 습관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세살 때 버릇이 잘못 들었나 보다. 앞으로 여든 될 때까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습관을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차를 모니 어느새 여의도 광장이다.
나야 풀코스 신청을 했다지만 하프코스를 그것도 깍두기로 참가하는 마눌은 더 걱정되는 눈빛이다. 내가 동마교 훈련할 때 같이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말로만 떠들다가 덜컥 하프에 참가하라고 코치님이 명령을 내리니 내심 불안하기도 할 터였다. 대회장에 도착하자 클럽 사람(이병일&차현순, 김광호)들과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화장실에 다녀오자 제대로 스트레칭도 하기 전에 출발 신호를 알린다. 우르르 출발선에 나가 파이팅을 외치며 오늘도 무사히 완주할 것을 다짐해 본다. 마눌은 하프 주자들과 뛰면 자기 뒤로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며 어차피 깍두기니 나랑 함께 뛴다며 뒷꽁무니를 바짝 따라 붙는다.
이윽고 출발 신호가 울리자 대지를 박차는 건각들의 요란함이 여의도 고수부지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좁은 길에 많은 주자가 동시에 달리니 헤쳐나가기도 힘들고 마눌이 옆에 있으니 혼자 뛰기도 뭣하는 사이 시간은 6min/km가 나온다. 동마 땐 마눌과 동반주를 하기로 했으니 이번 대회에서 동계마 훈련의 효과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이러면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 2km를 지나면서 홀로 뛰어 나갔다. 음~ 5분 페이스에서 벌써 3분을 손해 봤군.
너무 기록을 의식한 탓일까 자꾸만 왼쪽 발목이 묵직하게 저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도폭을 넓히면 충격이 커져 통증이 빨리 올 수 있으니 숏피치로 승부를 걸었다. 5km 정도를 지나자 주로가 넓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한 차례 정비가 된 듯 주자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10km를 지나며 시간을 보니 48:49다. 3분 늦은 걸 계산하면 4:30초 주로 달린 셈이다. 일단 이 상태를 유지하며 광진교를 향해 달려나갔다.
돌발상황
자꾸 왼쪽 발목에 신경을 쓴 탓일까 성수대교를 지나는 시점부터 오른쪽 햄스트링에 이상한 느낌이 전달된다. 메추리 알만한 것이 콕콕 찌르는 것 같더니 점점 커져 달걀만 해지더니 이내 거대한 통증으로 번져오기 시작한다. 쥐가 난 것이다. 이제껏 달리면서 쥐가 나긴 처음이다. 원인을 생각해 본다. 스트레칭을 제대로 안 해서인가? 아니면 왼쪽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오른쪽 다리에 체중이 실려서 인가? 아무래도 둘 다 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어떤 처방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서 다리를 주무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오늘 당초에 세웠던 계획은 여기서 포기해야 하는가? 포기를 안 한다면 참고 달려야 하지만 이미 달릴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은 심해져 있어 기록에 대한 집착은 버리기로 했다.
뒤에서 오던 같은 클럽의 찬이 엄마가 괜찮냐며 안부를 묻고 간다. 나이키 동계훈련팀(서브3)에 들어가 굿굿이 훈련하고 있는 아이 둘의 애 엄마다.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작년 제주 아이언맨대회에도 나가 완주했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남편의 순애보와도 같은 지극정성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것이 그녀의 회고담이고 보면 그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오늘도 그 팀과 합류해 거리주 훈련(30km 5분주)을 하고 있다.
뛰다 걷다 하는 사이에 반대편에서 낯익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뛴다. 구본용 선배다. 언제나 독립군으로 혼자 뛰시는 분. 밝은 미소만큼이나 가벼운 몸놀림으로 뛰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본다. 그리곤 바로 멈춰서 버린다. 아~ 왜 이럴까? 혹시 영양공급이 제대로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준비해 간 파워젤을 먹어 본다. 몇 번이고 가다서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차라리 더 큰 부상 입기 전에 그냥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LSD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천천히 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럴 땐 회수차도 안 보인다니깐.
불과 5km를 뛰었는데 시간은 35분을 넘어서고 있다. 속도를 늦추자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번엔 메추리 알이 왼쪽 종아리로 넘어왔다. 양 다리가 서로 핑퐁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다급한 김에 늘어진 시간을 만회하려고 보폭을 늘렸던 게 원인인 것 같다. 다시 보폭을 줄이고 조금씩 스피드를 더해 본다. 이렇게 통증을 느낄 땐 무조건 아기 달래듯이 얼러야지 공연히 성깔로 우격다짐 하면 바로 퍼져버리게 된다. 그래 오늘은 주로에서의 돌발상황에 대한 준비와 대응방안에 대해 훈련하고 있는 중이다. 자주 하는 훈련이 아니니 슬기롭게 넘겨보자. 그래, 착하지 애기야~
유쾌한 질주
하프에 이르자 통증은 많이 수그려 들었다. 1:51:16 뭬야~ 어이없는 기록이었지만 그나마 후반에 시간을 단축한 덕에 많이 줄어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사실 한강은 내 나와바리인 셈이다. 집 근처라 연습 때 항상 뛰었었고 한강에서 하는 각종 대회도 대부분 같은 코스일 뿐더러 언덕구간이 없으니 달리기에는 그만이다. 물론 거리 표지판이 매 킬로마다 있어 시간이나 거리 측정하는 데 더 없이 편하다. 그렇게 눈이며 몸에 익은 거리를 달리니 마음도 편하다. 그래 이제부터는 달린다. 하프까지 달려오면서 음료대에서 멈추지 않았다. 컵도 들고 뛰며 두 모금만 마셨다. 쵸코파이는 야금야금 베어먹었다. 예상외로 음료대에서 서 있는 시간이 기록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일단 쉬면 다리는 자꾸 쉬려고 한다. 그것도 관성의 법칙에 따른다. 그래서 이번에 절 대 쉬지 않고 달리기도 했다. 과연 5분주 속도로 계속 달리면 데드포인트는 어디쯤이 될까 스스로 걱정이 앞섰지만 지난 동마교 훈련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달려본다.
내가 다리를 주무르는 동안 나를 앞서갔던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 둘 내 어깨 뒤로 날려 보낸다. 아무도 나를 추월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분 좋은 질주다. 30km에 이르니 2:36:36다. 5분주로 계속 달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이 지점을 2:30분에 통과했지만 저려오는 다리를 더 이상 어쩌지 못해 스피드가 점점 느려졌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의 한계를 32km라 스스로 정해버리기도 했다. 그 문제를 권코치와 상의하니 장거리 훈련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지적해 준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하프 이상은 훈련을 안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힘드니까. 그래서 항상 후반에는 쳐졌던 것이다. 그럼 이번엔 어느 지점이 데드포인트일까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37km일 것으로 예상했다. 다 왔다는 안도감 때문에 근육의 긴장이 풀려 통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쉬면 안 된다. 한번 쉬면 계속 쉬고 싶기 때문이다. 과연 그 지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왠지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쌓인다.
다행일까? 37km를 지나도 예의 통증이 안 느껴진다. 재밌다. 정말 재밌다. 몸도 가볍다. 화장실에 들렸지만 잠시 쉬는 동안에도 다리가 저려오지 않는다. 통증없이 풀을 뛰다니. 마지막 5km에서 올인 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그대로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후회 없이, 핑계 없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피니쉬라인을 밟아보자. 그래야만 다음 대회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발한발 옮기기가 힘들었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다리 아파 쉰 것 빼고) 데드포인트도 없이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스피드가 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마치 1km 인터벌훈련 하듯 피니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3km, 2km, 1km…골인!!!
3:36:40!!
마지막 12km를 한시간에 뛰었다. 전 같으면 보통 이 구간을 6분주로 달렸었는데 스스로도 미끼지 않는다. 체력의 향상과 더불어 정신력의 승리라고 해야 할까? 비록 기록은 3:30분에 못 미쳤지만 가능성에 대한 절반의 희망은 건져 올린 셈이다.
마눌이 두 손을 들어 맞아 준다. 아~ 결승선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버팅기는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또한 다음 대회에는 부상 없이 참가해 최선의 경기를 치룰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전신을 전율케 한다.(아니, 막걸리 때문에 전율했나? 막걸리와 따끈한 순두부가 경품처럼 느껴진다)
이번 대회에서 느낀 것은 지난 대회와 완전히 달라진 나의 몸과 정신력이다. 동계훈련으로 한층 강화된 다리 힘과 무엇보다 힘든 구간에서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정신력을 느낄 수 있어 뿌듯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동마교의 교주이신 방선희 감독이 애시당초부터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 힘든 이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기록은 항상 제자리 걸음입니다. 이 순간을 이겨내야만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부운~”
그리고 권은주 코치의 세심한 배려와 지도가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물론 주위에서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신 동마교 회원께도 감사 드린다. 남산 오르막 훈련을 하면서 더 이상 뛰기 싫었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그 인내가 이렇게 달디단 열매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앞으로 남은 훈련기간에 교주 말씀에 더더욱 맹신, 맹종하며 따르리라. 그리하여 빛나는 졸업장을 훈장을 목에 걸고 퇴소하리라.
글을 맺으며
어제 고생한 두 다리를 쓰다듬어 본다. 발목은 퉁퉁, 햄스트링과 종아리는 찌끈꺼리며 화를 낸다. 미안하다 다리야. 하지만 사랑한단다. 우리 다음 대회 때는 좀 더 열심히 뛰어 보자. 32km까지는 4:40로, 나머지는 5분주로, 알았지? 그러려면 푹 쉬어야지?
어쩌면 이번 주중숙제는 못할 지도 모른다는 즐겁고도 게으른 흥분이 전신을 나른하게 애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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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2005-02-14 15: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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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대단하십니다...신공이 많이 쌓이셨나보네요 아픈다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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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2005-02-14 15: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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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찌 텐언더에 엄살 부리시는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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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벽호 (2005-02-14 16: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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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은 광고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보조장치라고나 할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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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2005-02-14 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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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열심히 운동들 하시는 군요. 올해는 유독 추위를 타네요. 그 핑개김에 운동은 아예 접고 있습니다. ^^* 운동해야 할텐데 극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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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2005-02-14 21: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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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상당한것 같네...내가 36분에 들어온것 같어!!! 꾸준한 발전에 박수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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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식 (2005-02-15 12: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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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거걱... 놀라운 기록 승리네요. 역시 연습 앞에는 당할 자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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