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분리 수거를 시작한 어느 해부터인가 음식 쓰레기통 주변에는 쥐들이 내 세상 만났네 하며 분주하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동물 습성이란 것이 그렇듯이 초식동물은 주로 상대를 살피기를 잘한다. 피해의식 때문이리라. 쥐란 놈은 태생이 숨어 살기 좋아한지라 발자국 소리가 나거나 눈만 마주쳐도 후다닥 쥐구멍(배수구)으로 숨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던 것이 그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쥐와의 묘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먹을 거리가 부족했을 땐 덩치가 쬐그만했던 쥐란 놈들이 음식 쓰레기통에 담겨진 천혜 별미를 무한정 맛보기 시작한 이후론 점점 살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몸이 무거워져 걷기조차 힘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사람과 마주쳐도 꼬리 밟힐까 줄행랑 치던 놈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간신히 차 바퀴로 몸만 숨기며 숨을 헐떡거린다. 더군다나 그렇게 배불리 먹고 나서 할 짓이 없었던지 삽시간에 2세들을 싸질러 놓아 아파트 일대는 때아닌 동물농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런 상황이 되풀이 되던 어느날부터인가 이 놈들이 아예 수적인 우세를 믿고 강짜를 놓기 시작했다. 사람이 지나가도 피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다보니 반상회에서 난리가 났다. 쥐가 무서워 못 다니겠다고 부녀회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다. 나 역시도 밤늦은 귀가길에 어두운 곳에서 잔뜩 웅크리고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그놈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기분 좋게 먹던 술까지 깰 정도로 불쾌한 감정이 일 정도였으니 아녀자들은 말해 뭣할까.
그래서 쥐 퇴치를 위한 반상회가 열리고 관리사무소에 대처방안을 강력히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쥐약을 놓을 수도(그러면 각 동마다 즐비하게 전사한 쥐 시체 때문에 집값이 폭락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음) 없고 마땅한 대책이 없던 터에 누군가 천적인 고양이를 기르자는 제안을 하자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쥐 없는 자리에 고양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출현으로 불과 얼마 안되어 지저분한 쥐들은 삶의 보금자리를 고양이에게 물려주고 정든 땅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쥐 문제가 일단락 되자 아파트 주민들은 한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쥐가 행했던 역할을 고양이가 대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자기보다 큰 짐승인 사람을 무서워 해 헛기침만 들려도 잽싸게 숨던 그놈들이 맛난 쥐 고기를 맛본 후론 덩치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호랑이나 여타 맹수처럼 어슬렁 어슬렁 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우 쫓아내니 호랑이가 들어앉는 격이다.
밤이면 여기저기서 짝짓기를 위해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도 섬짓하건만 어두운 데서 노랗게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은 옛날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영험한 고양이의 이야기가 떠올라 머리카락이 쭈뼛거린곤 했다. 그리고 야생생활을 하다 보니 성질이 옹팍스러워져 다분히 공격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아이들을 무서움에 떨게 만들었다. 거리다 계속 불어나는 새끼들로 인해 우리 동네는 또 다른 골치거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빨리 재건축을 하던지 해야지 원~
그런데 그런 우여곡절 끝에 동네에서 사라진 쥐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지난 일요일 「아~ 고구려 역사지키기」마라톤 대회에서 난생 처음 오른쪽 다리(햄스트링)에 쥐가 나더니 영 가실 줄을 모른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별반 도움이 안되고 집에서 진동 안마기며 핫팩을 동원해 치료를 해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천적이 무얼까 생각해 보지만 마땅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동호회(10under) 팀닥(팀닥터 김광호 님)의 말로는 한달도 갈 수 있다고 겁주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번 주 숙제를 미루다가 수요일에 마눌과 10km를 가볍게 뛰었는데 조금씩 풀리긴 하지만 한 방에 해결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숙제는 마무리해야 겠기에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의 유혹에 빠져 한강시민공원을 나왔다. 보통 여의도 방향으로 달리면 맞바람으로 힘들었는데 오늘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바람이 없는 것 같다. 방감독께서는 그냥 주중 숙제만 내시지 이름까지 지목을 해가며 훈련양을 지정하니 부상 핑계로 일주일을 공치려 했던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뒷바람을 받으니 한결 달리기가 수월하다. 목표가 5km 23분이니 4’36”/km로 달려주면 된다. 작년 6월인가 보폭을 늘리는 훈련을 하던 중 10km를 43분대에 뛴 적이 있었다. 그 이후 6개월 가량을 슬개건염으로 고생한 이후론 숏피치로 돌아섰지만. 그래서 그다지 힘들게 생각지는 않았지만 발목과 쥐의 하모니를 어떻게 견뎌내느냐가 관건. 일단 뛰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턴하기로 마음 먹고 여의도로 향한다.
1km 4:02 음~ 좀 빨랐나? 이 속도로 계속 뛰어말어?
2km 4:09 8:12 조금 숨을 다듬으니 달릴만 하군
3km 4:05 12:17 이 속도로 얼마나 달릴까?
4km 4:05 16:23 얼레 아까랑 같네?
5km 4:19 20:42 헉! 15초나
6km 4:19 25:13 스피드를 더 낸 것 같은데 똑같네.
7km 4:26 29:39 맞바람 땜시 힘들군
8km 4:36 34:16 그렇다고 이건 너무 하잖아
9km 4:27 38:43 좀체로 처음 스피드가 안나온다
10km 4:29 43:13 적당히 자신과 타협하는 것 같다
역시 예전에 비해 근력이 많이 좋아졌다. 전에는 7km 지점부터 다리근육이 뻣뻣해 지기 시작해 어거지로 달렸었는데 오늘은 그다지 힘든 것을 못 느낀다. 다만 발목에만 신경이 쓰일 뿐. 하지만 후반의 스피드 저하는 무얼로 해명해야 하나? 맞바람 때문이라고 둘러치면 될까? 너무 기록이 들쭉 날쭉이다. 10초를 늦추는 건 쉬운데 당기는 건 역시나 힘들다.
집에 돌아오니 왼쪽 종아리까지 힘줄이 당겨 장거리 훈련 시 문제될 것 같은 즐거운(?) 예감에 빠졌다. 마눌의 정성어린 마사지를 받고선 머루주 한잔을 한다. 왜 이리 향과 맛, 때깔이 쓰리쿠션으로 죽이는 거야.
부상은 신이 내려준 휴식이란다. 내일 쉰다지만 토요훈련을 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차라리 다 나을 때까지 그냥 쉬어 버려? 아니면 근육이완제인 쐬주를 실컷 마셔버리고 퍼져 버려? 도대체 쥐의 천적은 뭘까? 이참에 아예 고양이를 길러?
머루주에 홀딱 빠진 마눌 눈빛이 고양이 마냥 야시시하게 흔들린다. 안뒤야, 부상 중이여. 쉬어야 되욤, 그냥 쿠울~~~
박영준 (2005-02-18 12:36:37)
오늘 수영으로 다리근육을 풀고 끝나고 소주한잔 하시면 다 해결될듯...ㅎㅎ
